흔적을 찾다가... Blog
2009.02.13 00:22 Edit
혹시라도 이대로 내 생이 끝난다면 무엇을 가장 하고 싶을까?
많이 생각해봤는데 우선은 내가 받은 오해를 풀기 위한 긴 유서를 적는게 제일 먼저 할 일이고
두 번째로는 내가 오해했을지 모를 사람들의 사연을 잘 알아두는 일을 해야겠고
세 번째로는 순간이라도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내 사랑을 충분히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생이 끝나는 시점에 혹시 조금이라도 이루어놓은 것이 있다면
아마도 내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완벽한 모습으로 이루어 놓았을테니 아쉬움이 없을 것 같다.
조금도 이루어 놓은 것이 없다면 그만큼 미련도 적을테니 아쉬움도 없을 것 같다.
그런식의 생각을 하다가...
반복 되는 이사 속에서도 끝끝내 버리지 않고 최대한 간직하려고 노력한 흔적들을 되돌아 보자고 결심했었다.
몇 일이 걸리도록 편지를 노트를 소포를 선물을 하나하나 다시 다 보았다.
어린 시절의 흔적들은 많이 없어졌지만 그래도 중학교 이후의 흔적들은 많이 남아 있어서 시간이 꽤 걸렸다.
군대에서 받았던 편지뭉치...를 보다가
내가 쓴 편지를 볼 수 있으면 더더욱 좋을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 마음은 내가 쓴 글에 더 묻어 있을텐데...
자취하는 나를 위해 파스와 함께 보내준 소포에 들었던 편지...
이미 유효기간이 많이 지났지만 사용하지도 못하고 보관해두었었는데 어디갔는지 편지만 남았더군.
비닐포장도 뜯지 않은채 보관되고 있는 선물 받은 노트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몰라도 태어나서 가장 최고의 선물이었던 생일 선물...
끝내 그걸 스캔할만한 스캐너도 보관할 수 있을만한 공간도 없어진 작년 여름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고 버렸다.
아니 어쩌면 그 집에 그대로 보관되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참 나를 많이도 무조건적으로 좋아해주었는데 나는 그만큼 좋아해주지 못해서 미안했던...
그래서 연락 못하게 된지 너무 오래되버린 착한 순둥이 소녀가 사준 휴대폰 고리
친해지고 싶다는 징그러운 중학교 동창의 롤링페이퍼 속 멘트...
영어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냐던 질문글
잘난척해서 재수없다던 글
정해둔 품목을 사줄 사람도 정해놨으니 생일 선물을 꼭 그걸로 사달라는 메모
답장도 없는데 매년 카드를 보내서 부담됐는데 올해에는 답장을 해서 마음이 편하다던 카드
도저히 누군지 모르겠는데 마음을 표현한 메모가 떨어진... 오랜만에 꺼낸 책..
성격답지 않게 너무도 수줍게 마음을 표현했던 후배의 연습장
차마 보내지 못하고 버리지도 못 한채 보관해 두었던 내가 쓴 메모
참 모나게 살아온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랑을 받았다...
무뚝뚝하게만 살아온 줄 알았는데 난 언제까지인가는 매년 카드를 쓰고 선물을 사주며 살았다.
국민학교에서 매주 나눠주던 갱지에 프린트 된 주간 계획표
버스표를 사기 위해 나눠주던 교환권?
금액이 남았지만 보관하기 위해 남겨두었던 지하철 정액권
학생 버스카드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해서 걱정인데 사고도 안치는 이런 놈은 처음본다는 담임의 성적표의 활동사항
상대성 이론과 블록홀에 한참 빠져서 나만의 상대성 이론을 만들겠다고 설치던 흔적의 책들
근래에 들어서 버는일 보다는 불리는 일이 더 중요하다면서 사놓은 돈과 관련된 책들
지홍이 아버지께서 사업하시던 때에 지홍이가 가져다 준 모나미 볼펜 수십자루...
(나름 공부 열심히 했다고 했는데도 얼마를 갖다 준건지 아직도 수북하다)
전공 책을 버리더라도 꿈을 버리는 것 같아서 버릴 수 없는 정석 5권...
말로는 쑥스러웠던지 존경한다면서 호두과자와 함께 전달해준 후배의 메모
물론 지금은 많이 없어져 있을테지만..
내가 정말 잘 못 살지는 않았다는 확신을 갖게 해주는 흔적을 많이 찾았었다.
물론 재수없고 잘난 척하는데다가 매주 여자가 바뀌고 술먹어도 멀쩡하다고 욕하는 사람도 많기는 했다.
맨날 대장만 하려고 한다는 사람도 있었고, 친구의 여자를 좋아했다면서 실망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얼마나 못난 아들이었는지 눈물 자욱이 아직도 선명한 어머니의 편지와 메모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웃으며 넘어 갈 수 있었는데
살면서 가장 내가 잘 못 살았다고 느끼게 한 사건이 있었다.
꼭 다시는 이런 일을 겪지 않겠다고 그렇게 다짐했는데...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결국 난 잘못된 삶을 살고 말았다는 증거
사랑을 하고 헤어진 이후에...
연락을 한번도 하지 못했다.
고마움을 미안함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다시는 찾지말라고... 잊어버리고 지워버리고 싶다고...
그렇게 매일 밤 나를 괴롭히던 날들이 있었다.
다신 이렇게 힘든 이별을 하진 않고 싶었지만, 그게 사람 마음으로 되는 일은 아닌지라
이별하게되면 서로를 너무도 잘 아는 이성친구로서 오빠 동생으로 그렇게 결혼식에 찾아가고 찾아오는 그런 만남을 갖고 싶었다.
적지 않은 선물도 받았고 추억도 받았고 사랑도 받았고 노력도 받았고
헌신도 희생도 모든 것을 다 받고 사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나를 지우겠다는 얘기를 듣고 말았다.
충분히 고마웠다고 미안하다고 서운하다고 표현하지 못했다.
또
또
또...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내서 위로해주겠다고 한다.
발렌타인 데이에 마누라를 버려두고 서울로 상경하겠다고도 한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감히 묻지도 못하는,
내가 너무 사랑하는?
나를 사랑해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가장 사랑하는 한 사람
평생을 함께 하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그 사람 밖에 보이지 않았던 그 사람
그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나를 지우겠다는 얘기를 반복해서 듣고 있는 내 삶의 흔적을 찾았다.
홈페이지의 수많은 글을 모두 다 읽다보니...
당시에는 몰랐는데 나에게 메세지를 남긴 사람들이 꽤 있었다.
좋은 친구지만 남자로는 보이지 않는다던 그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 곳에 와서 나를 걱정했었다.
마음을 표현했는데 이별에 아파하던 내가 약속 장소에 연락도 없이 나가지 못했던 그 아이도 흔적을 남겨두었다.
한때는 둘도 없는 친구처럼 지냈지만 한 여자를 두고 일방적으로 오해하더니만 영영 남남이 된 사람의 흔적도 있었다.
친구와는 헤어졌지만 꾸준히 찾아와 흔적을 남겨둔 사람도 있었다.
흔적은 남기지 않지만 종종 찾아왔다간 사람의 흔적도 찾아냈다.
헤어진 연인의 근황이 궁금해서 연락을 한 사람의 흔적도 있었다.
참 많은 흔적이 이 곳에도 곳곳에 숨어있었다.
그리고 비록 아무런 인연이 되지도 못하였고 지금은 연락도 하지 못하고 지내지만
한때는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만남을 가졌던 사람들에 대한 내 머리속의 흔적
갑작스레 닥쳐온 고통의 시간들 속에서 연락하지 못해서 미안함이 가득했던
소중한 친구가 걱정과 함께 서운함을 남겨둔 다른 블로그나 카페에도 많은 흔적들이 있었다.
참 많은 사람을 잃었다.
여자라는 동물은 연애를 하면서 아무리 진실을 진심을 호소해도 잃을 수 밖에 없었고
남자라는 동물도 질투의 대상이 되거나, 생활이 바쁘면 간혹 잃기도 했다.
데모하면서 잃은 후배도 있었고
조금만 굽히면 되는데 자존심 챙기다가 잃은 선배도 있다.
누군가는 구둣발 자국을
누군가는 가슴아픈 상처를
누군가는 무한한 감사와 존경심을
흔적으로 남겨두었다.
그리고 그 흔적들을 이제는 거의 다 찾아낸 것 같다.
너무 오래된 일이지만 아직도 기억한다.
고맙게도 연락해주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을텐데도.......
좋게 포장해서 안부를 전해주었다.
고마워.
잊지 않아줘서...
행복하다니 다행이야.
미안해.
너무도 힘들게 했던 시간들.
최근에 내게 남은 흔적 중에 가장 행복한 흔적을 남겨주어서 너무도 고마워
지도 보면서 어디서 뭐 할지 생각한지도 꽤 오래 됐는데..
결국은 놀이동산을 한 번도 같이 가보지 못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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